2026 EXHIBITION
2026 EXHIBITION
정해나 : 돌계집
기간
2026. 06. 23.(화) - 07. 10.(금) 10:00~18:00
장소
호랑가시나무 글라스폴리곤, 베이스폴리곤
작가
정해나
서문·큐레이팅
백필균
사진 기록
장보윤
주최
호랑가시나무창작소
주관
정해나, 호랑가시나무창작소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돌계집
-2026년 정해나에게 보내는 글
백필균
때아닌 첫눈에 시든 몸이 감긴다.
네 손은 미풍이 스민 잎사귀를 들어올려 풀벌레 자매에게 안부를 묻는다.
지난겨울을 해부하는 순서에 손님들이 옹기종기 모인다. 이곳의 모임은 실종자의 단서를 쫓는다. 증언하는 흰 입시울이 너를 부르고 너와 기다리며 너에게 응한다. 남다른 각오로 지새우는 밤. 검은 너덜에 널리는 발자국이 눈보라와 함께 사라진다. 돌머리마다 한밤이 드리운다. 밤의 장막 너머는 잎의 주인이다. 그는 너와 허공을 떠날 참이다. 흩날리는 눈발이 어디에 다다를지 아무도 모른다.
나중에 설명할께.
하루 일과를 마치면 산책을 다닌다. 잎이 얼어붙은 자리를 또 다시 찾는다. 몇 달이 지났을까, 잎사귀 자리가 불현듯 빈다. 빈 자리는 서늘한 햇빛이다. 나뭇가지 끝에 새 잎이 날 수 있을까, 라는 속마음의 문장을 써내려가는 곳이다. 되묻는다. 겨우내 겻불 쬐는 한 자리를 양보하는 선택에 각오가 필요한 일인가. 사그라드는 글은 약속하는 땔감이 되기를 자처하고, 조금 더 흔들리는 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낙하하는 계절에 매서운 공기가 방앞까지 들이닥친다.
유월의 동생은 이곳에서 자매의 사연을 수집한다. 진딧물이 무성생식을 한대요, 라고 유월의 언니가 말한다. 진딧물은 알이 아닌 새끼를 낳는다. 딸이다. 진딧물 어미는 혼자 딸을 낳는다. 모종의 세포 분열. 유전자가 일치하는 두 세대, 어미와 딸이자 언니와 동생인 사연. 아이를 낳아 기르는 풀 속의 대자연, 내 벗들은 철매를 얻어 마지막 인사를 남긴다. 길 건너 성당 화단에 풀들이 서로 부둥켜 안은 채 동풍을 따라 흔들린다. 그리고 기다린다. 누군가에 의해 서로 매듭지는 이야기가 타의를 엮고 자의를 푸는 자세로 군무를 연습한다. 이곳에 거의 모든 인연이 하나로 모인다.
아랫집 딸은 아비가 어미를 때리는 새벽에 계단을 오른다
윗집 딸은 어미가 광주로 내려가는 소식에 기쁨을 표한다
세계의 멸망보다 내 멸망의 시계가 더 빠르다
폼페이의 최후(책)는 제일 위에, 노동의 종말(책)은 제일 아래다
둘 다 잘 되었어
지네가 천장과 유리창과 바닥을 기어오르자 사이렌을 울린다
벗을 격려하는 벗들은 손바닥보다 분명 작았을 나방이 무서웠지만
결국에 왔다, 호랑가시나무 앞집까지
때이른 고백이다.
멍청하게 놓인 책들 사이 혼잣말은 아무도 듣지 않는다. 아이 낳지 않겠어요, 라는 아무의 말에 온 우주 세상 마을 사람들이 지지를 보낸다. 꿈이다.
잔입은 맹물을 마시고 여명의 자백을 듣는다. 새벽 네 시 이십오 분, 새가 운다. 그리고 한동안 적막이 흐른다. 어수선한 시기의 묵직한 짐들 사이에 왼쪽 검지 손톱이 끼어 윗면이 깨진다. 마을 한편 도로 반대편 건물의 실외기 소리가 잃어버린 감각을 깨운다. 방구석에서 지네가 탈피한 껍질을 응시하는 당신은 낮과 밤의 경계를 걸으며 깨어난다.
때마침 네 방의 배관에 희뿌연 몸이 새어나온다. 아이 낳지 않은 여자래, 라고 수군거리는 마을에 배관의 연기가 다다른다. 튀어오르는 머리와 뻗어나가는 꼬리가 공기를 가른다. 수없이 분리되는 몸. 메두사의 조각도 태호석이 될 수 있을까. 굳어버린 내 몸은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하고 몇 번을 오른쪽으로 기울인다. 시계 방향으로 돌아간다. 등 뒤로 쓰러진다. 수십 번 고쳐 잡는 자세. 지상의 폐온실에 책장을 다시 편다. 발아래 무궁화 꽃잎이 떨어진다. 성당에 아무처럼 앞마당의 풀들이 머리를 곱게 묶는다.
오늘은 풀어도 될까.
이삿짐에서 잃어버린 먹 대신 내 나라와 이웃나라의 먹으로 팔쌍둥이를 낳을 것이다. 검은 입마개를 구기는 모양새로 이제껏 숨은 몸을 마음껏 드러낼 것이다. 이야기 하나를 문체 여럿으로 옮기는 것은 전략이다. 내 자리는 네 자리가 아니라 말할 것이다. 지난 겨울 땅에 묻은 입을 꺼내는 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