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EXHIBITION
2025 EXHIBITION
호랑가시나무 숲
기간
2025. 11. 03.(월) - 11. 23.(일) 10:00~18:00
장소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글라스폴리곤, 베이스폴리곤
작가
김나리
광주 양림동은 오랜 세월 동안 신화와 역사, 신앙과 예술이 교차해온 땅이다.
1914년 행정구역이 효천면으로 개편되기 전, 이 지역은 ‘부동방면(不動坊面)’이라 불렸다. 이는 불교의 수호신 부동명왕(不動明王) — 산스크리트어 아찰라나타(Acalanātha), ‘움직임 없는 보호자’ — 에서 비롯된 이름이라 한다. 부동명왕은 번뇌를 끊고 중생을 구원하는 존재로, 검과 견삭을 들고 악을 제압하는 형상으로 그려진다. 이처럼 ‘부동방면’이라는 이름에는 예로부터 이어져 온 신성한 수호의 의미가 스며 있다.
양림산과 사직산은 본래 하나의 산이었다. 새마을운동 시기 도로 개설로 산이 둘로 나뉘면서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산속에 자리한 사직단(社稷壇)은 예로부터 국토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던 국가 제단의 전통을 잇는 장소다. 그 유래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고려와 조선을 거쳐 외란이 일어날 때마다 나라의 안위를 비는 제사로 이어졌다. 양림산의 사직단은 이러한 제단 문화의 흔적을 품은 곳으로, 1991년 사직공원 조성 과정에서 복원되었다.
1904년 이후 양림동은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근대 문명이 들어선 첫 터전이 되었다. 제중원(현 광주기독병원)을 비롯해 나환자 구호사업, 간호교육 등 한국 근대 의료와 복지의 출발점이 바로 이곳이었다. 유진벨, 오웬, 최흥종, 서서평, 포사이드, 언더우드, 류화례 등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 땅을 거쳐갔고, 일제강점기에는 정율성, 정추, 정준채, 김현승, 배동신, 이수복, 천경자 등 예술가들이 시대의 고통과 이상을 품고 이곳에서 성장했다.
또한 ‘부동방면’의 이름처럼 번뇌를 끊고 중생을 구원하는 ‘움직임 없는 보호자’의 상징 아래, 임진왜란 시기에는 장군 정충신이, 일제강점기에는 광주 3·1운동과 2·8학생운동, YMCA·YWCA, 비밀 항일 결사조직인 신문잡지종람소와 흥학관 등이 이곳에서 태동했다. 이 산에는 ‘광주의 어머니’로 불린 조아라 여사의 흔적도 남아 있다.
이 산에는 지금도 수령 400~500년으로 추정되는 호랑가시나무가 자생한다.
귀신과 액운을 막는 나무로 알려진 호랑가시나무(Holly)는 영어 단어 Holy(성스러운)와 닮아 있다. 그 잎은 예수의 고난을, 붉은 열매는 피를, 그리고 가시의 형상은 면류관을 상징한다. 우리에게 ‘사랑의 열매’로 알려진 나무 또한 바로 이 호랑가시나무다.
이 나무는 마치 시대마다 사람들을 지켜온 ‘움직임 없는 보호자’처럼, 이 땅의 수호신으로 서 있다.
김나리의 조각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슬픔과 치유의 욕망, 그리고 세계를 향한 깊은 연민에서 비롯된다. 그녀의 얼굴들은 특정 인물의 초상이라기보다 인간, 동물, 식물, 나아가 영혼의 세계까지 포괄하는 보편적 존재의 상징에 가깝다. 작가가 반복적으로 다루는 ‘얼굴’은 개인의 정체를 드러내는 외형이 아니라, 세계와 자신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내면의 언어인 것 같다.
기존 연구자들은 김나리의 얼굴상이 인간의 타자성과 공존의 문제를 성찰한다고 본다. 타자를 대상화하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고, 그저 ‘타자의 무한성’ 앞에 머무르는 태도 — 그것이 그의 작업의 핵심이다. 그래서 김나리의 얼굴은 슬픔이나 고통을 드러내기보다, 그것을 내면화하고 사유로 전환한 명상적 표정을 띤다. 작가에게 얼굴은 현실의 폭력과 억압으로 사라진 존재들에 대한 애도이자, 그들의 상처를 품은 자신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작품을 마주한 순간, 그 얼굴들은 작가 자신과 닮았다는 인상보다 오히려 ‘누구의 얼굴도 아닌 얼굴’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특정한 기억이나 사건을 재현하기보다, 작가 스스로도 완전히 인지하지 못한 내면의 움직임 — 무의식이 빚어낸 형상에 가깝다. 김나리의 얼굴은 이성적으로 계획된 이미지가 아니라, 알 수 없는 내면의 파동이 흙의 표면을 통해 드러난 결과물이다.
이러한 무의식적 표현은 그가 반복적으로 자연, 생명, 죽음, 상실과 같은 주제를 다루는 이유와도 닿아 있는 것 같다. 작가는 생명 간의 위계를 거부하며, 인간과 동식물, 영혼의 세계가 같은 시공간 안에서 호흡한다고 믿는다. 얼굴은 그 모든 존재들이 서로의 고통을 전이하고, 위로하며, 다시 생명을 이어가는 매개적 장치로 작동한다. 즉, 얼굴은 단순한 인간의 상징이 아니라 ‘세계의 숨결을 담는 그릇’이 된다.
결국 김나리에게 ‘얼굴’은 존재의 거울이자 질문이다. 그 얼굴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타인의 얼굴을 본다기보다, 우리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무표정하고 조용한 그 얼굴들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감정을 환기시킨다. 그것은 절규가 아니라 침묵 속의 울림이며, 외형이 아니라 내면을 향한 사유의 초상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 — 슬픔과 평온이 동시에 깃든 감각 — 에 사로잡힌다. 어쩌면 그것이 작가가 흙으로 말하고자 한 인간의 진실일 것이다.
이러한 영적 풍경 위에 김나리 작가의 전시 ‘호랑가시나무 숲’이 열린다.
도조(陶彫)를 기반으로 하는 김나리의 조각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 존재의 순환을 이야기한다. 그녀의 작품 속 인물들은 얼굴 없는 이들이지만,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처럼 고통과 치유, 신비와 구원의 감정을 품은 채 하나의 ‘숲’을 이룬다. 그것은 마치 양림산에 스며든 수많은 영혼들, 이름 없이 사라진 이들의 형상과도 같다.
이번 전시는 양림동이 품은 영적 기억과, 흙에서 생명으로 깨어나는 존재들의 신비를 함께 보여준다. 김나리의 ‘호랑가시나무 숲’은 단순한 조형의 숲이 아니라, 오랜 세월 이 땅을 지켜온 ‘아찰라나타’, 즉 움직임 없는 보호자의 숨결을 이어받은 신화적 풍경이다.
2025년 가을, 이 전시는 양림의 기억을 되살리고, 그 속에서 인간과 자연, 신성과 예술이 하나로 맞닿는 순간을 선사할 것이다.
그리고 관람자는 그 숲을 걸으며, 자신 안의 얼굴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